성호제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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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해조추출물인 후코이단을 상품화하여 건강식품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사업가 성호제 씨. 사실 그 자신도 건강식품사업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릴 때부터 모범생 소리를 들으며 자라 서울공대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모두들 그가 대기업에 입사하거나 공학자의 길을 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는 게 있었다. 비록 공대생이 되긴 했지만 그가 기계보다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사람 사귀고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생명체로서의 인간'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기계와 인체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세요? 기계는 고장 나면 반드시 누군가가 고쳐 줘야 해요. 그런데 인체는 자기 스스로도 병을 고칠 수 있어요. 저는 그게 참 경이로웠어요."

친구들이 사회과학세미나, 봉사활동, 영어회화 같은 동아리에 들 때 성호제는 '역도부'를 선택했다. "무식하게 역도가 뭐냐, 역도가?"하는 야유도 받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역도의 매력에 빠졌다. 내친김에 '미스터 서울대 선발대회'에도 출전했다. 출전자격은 모든 서울대생에게 주어졌지만 사실 그 대회는 체육대 학생들의 독무대였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무대에 올라가 연기를 보였는데 예상 외로 1등을 하게 되었다.

"몸은 거짓말을 안 해요. 담배를 피운 날과 안 피운 날, 술을 마신 날과 마시지 않은 날, 몸은 분명하게 차이를 보이거든요." 여윈 몸이었지만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 나가자 조각상처럼 변하는 것도 놀라웠다. 러나 가장 큰 소득은 고교 3년 내내 입시공부에 시달려 쇠약해졌던 몸이 건강하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당시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해외여행이었다.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들만 가는 것처럼 인식되던 때였어요. 그런데 꼭 외국에 나가 보고 싶었어요. 책에서만 본 것들을 직접 보고 싶었고, 선진국들을 둘러보면서 배우고 싶은 게 많았어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시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없을 테니, 대학시절이야말로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악착 같이 아르바이트에 매달렸다. 학과공부와 운동,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걸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꼭 하고 싶다'는 열망과 '건강'덕분이었다.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북유럽과 서유럽 13개국을 여행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걷고 걷는 날들이었지만 건강한 몸 덕분에 힘든 줄을 몰랐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동상 앞에서]

  •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

  • [스페인 바르셀로나]

  • [독일의 고도 하이델베르크]

  • [스위스 호반의 도시 루쩨른의 '빈사의 라이언 조각상' 앞에서]

  • "몸과 건강에 자신이 생기자 세상에 무서울 게 없더군요. 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저것도 내가 제일 잘할 것 같고. 반대로 어쩌다가 한번 몸살이라도 걸리면 세상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는 거예요. 흔히 마음상태에 따라 병이 나기도 하고 낫기도 한다고 하죠? 그런데 그 반대일 때도 많아요. 몸이 건강하면 마음도 건강해져요. 아픈 상태가 오래가면 마음도 병들어요. 오랜 기간 투병하는 사람들이 예민하고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도 당연한 거예요." 이 경험으로 그는 '건강'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서울공대를 졸업한 직후, 그는 국내 유수의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면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4년 내내 매달렸던 전공분야인데도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었죠. 답답하더군요. 문득, 내가 전공한 기계나 나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솔직히 성호제 없다고 이 회사가 망하기야 하겠나. 언제든 기계 부속품처럼 갈아 끼울 수 있는 존재 아닌가, 이런 생각요."

    결국 그는 사표를 내고 기업의 마케팅 컨설팅과 홍보를 담당하는 인터넷 전문회사를 열었다. 그러던 2003년 가을, 어느 건강식품제조업체의 컨설팅을 맡으면서 그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회사는 당시로서는 아주 생소한 '후코이단'이라는 성분을 가진 해조추출물을 취급하고 있었다.

    "우리가 자주 먹는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해조류 속에 인체를 건강하게 하는 유용한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습니다. 한번 해볼 만한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생명을 살리는 사업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동안 사업을 하며 모았던 돈을 모두 투자한 것은 물론이고, 아예 자신의 인터넷 회사를 정리해 해조추출물 회사와 합병해 버렸다. 회사 간판은 '후코이단'으로 바꾸었고, 자신은 '사장'직함을 버리고 '총괄이사'가 되어 본격적으로 건강식품계에서 뛰기 시작했다. 이왕 할 바에는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수험생처럼 의학과 약학공부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후코이단'은 일본과 미국에서는 수십 년간 검증을 받은 아이템이었지만 국내에는 건강기능식품으로도 지정되어 있지 않은 생소한 존재였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건강식품'은 의학계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TV고발프로에도 종종 방영되곤 해 소비자들의 편견도 매우 큰 분야였다. 그러나 후코이단의 힘을 믿었기 때문에 그는 확신을 가지고 발품을 팔며 고객을 확보해 나갔다. '진심은 어디서나 통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고객들 대부분은 중병을 앓는 환자들이었다. 그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의 병과 체질, 상태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자기가 가진 의학정보를 총동원해 상담을 해 주었다. 제품을 파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그 정성으로 의대에 가지 그랬냐"는 지인들의 농담에도 그는 웃지 않는다. "병은 의사가 고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고치는 거예요. 우리 몸 속에는 늘 병이 도사리고 있어요. 그러다가 우리 몸과 의지가 약해지면 병이 치고 올라오는 거죠. 저는 일단 그렇게 치고 올라온 병을 잘 다스리는 법을 알려 드리고, 또, 발병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법을 미리 알려드릴 뿐입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더디게나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고객들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효능을 보았다며 감사인사를 보내는 사람들도 늘었다. 용기가 생긴 그는 그 동안 쌓은 노하우를 기반으로 하여 해조추출물 전문회사인 '한국후코이단'을 설립했다. 기반을 잡는 데까지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성호제 후코이단'의 브랜드가 건강식품 시장에서 뚜렷하게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그동안의 고생이 전혀 억울하지가 않다. 최근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고,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인사동 사무실로 옮긴 그는 '성호제 후'와 '펄후코이단'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건강식품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죠. 그게 진리입니다. 건강한 몸으로 여행 다니는 노년...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나 정작 그 자신, 후코이단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여행을 떠나보지 못했다. 시간적으로 도무지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여행도 하고 운동도 하고 싶어서 대기업까지 뛰쳐나왔으면서 정작 그 자신,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이다. "여행? 가야죠! 그런데 혼자는 안 갑니다. 누구랑 가냐구요? 저희 고객들이랑 가고 싶습니다. 저희 후코이단 제품을 먹고 건강을 회복한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그분들 모시고 여행을 가는 게 제 꿈입니다." 혹자는 그를 일벌레라고, 혹자는 세상물정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성호제 그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행복한 사람이자,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한 사람일 뿐이다. 그의 후코이단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