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보

Home > 건강정보/뉴스 > 건강정보

게시글 검색
암에서 회복한 사람들의 공통점 - 마음 먹기 나름
한국후코이단 조회수:101
2019-08-12 08:38:00

[암에서 회복한 사람들의 공통점 - 마음 먹기 나름]

 

 

 

암의 절망 속에서 회복한 사람들 간담회에서 체험으로 나온 말들 수십 페이지 중 도움되는 말을 골라 봤습니다.

 

 

 

 

모인 사람들 ; 병원에서 수술만 받은 사람통상적인 치료를 일절 받지 않은 사람병원의 3대 요법(수술항암제방사선)을 모두 받으면서 자연요법을 병행하는 사람

 

 

 

 

이들의 이구동성 한마디는?

병에 감사하고 병을그리고 암을 인생 최대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병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나고 새로운 인생을 출발시킨 사람입니다기존의 식사패턴을 현미 채식을 중심으로 식사를 바꿨습니다.

 

 

 

 

유방암 4기 판정 받은 여성 ; 이러한 경우 통상적으로는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가 이루어진다하지만 이러한 수술 뒤의 치료법은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치의의 성실한 설명에 따라 일절 아무 치료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현미 자연식 위주로 식생활을 했다.

 

 

입원 중에 암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을 읽었는데그때 암이라는 것은 수술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그리고 항암제나 방사선은 거꾸로 재발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절 아무 약도 먹지 않기로 했죠그래서 야채 중심으로 식사를 하면서단 것도 안 먹고 혼자서 열심히 노력했어요.

 

 

 

 

저자(신장암에 걸렸다 완치 된 NHK 방송국 PD) ; 경험이 적은 사람이거나 또는 너무도 고지식한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현미채식을 답답해하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너무 고지식하고 너무 열심인 탓에 암까지 걸린 사람들이 이번에는 암을 고치기 위한 식이요법으로 또다시 무언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 급기야 좌절해버리기도 한다.
 
 
 
 
병이 걸린 것에 감사
 
이 모임의 주관자도 29세 나이에 결핵을 앓다가 한때는 죽음에까지 임박했으나, 아는 사람에게 권유받은 현미식으로 결핵을 극복했다. 예전에는 결핵이 '죽을병'으로 불리던 시대이다. 60여 대의 스트렙토마이신을 계속 맞았는데도 병세가 악화되기만 했다. 결국 모든 약을 끊고 현미로 나아보겠다고 결심한 이분에게 의사는 비난의 목소리를 퍼부었다.
 
 
 
"그런 식으로 하니까 결핵에 걸린 거지. 세상의 수재들이 모여서 연구를 하고 있는 요즘 세상에 현미식으로 병이 낫는다면 어느 누가 그런 고생을 하겠나. 도대체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나!"
 
 
하지만 반년 후 그는 건강을 회복했고, 폐에 뚫려 있던 커다란 구멍도 깨끗하게 메워졌다. 그 후, 현미 자연식을 널리 알리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 분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식사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어차피 '물질' 세계잖아요. 결국 중요한 것은 마음이에요."
 
 
 
" 병은 바로 고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여기저기 헤매면서 힘들게 자신을 바라보는 게 좋아요. 그리고 그때까지의 자신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식사와 마음 모두요."
 
 
 
 
` 대장암 3기 수술 받은 남성 ; 부인의 정성 어린 관심과 보살핌이 없었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남편의 암을 부부 두 사람의 암으로 생각하고 고쳐왔습니다. 항상 둘이 같이 지내요. 목욕도 같이 하구요. 50대인데도요. 밤에 잘 때도 손을 꼭 잡고 잡니다."
 
 
 
 
부인 ; "제 힘을 남편에게 전해주는 거예요. 병은 마음에서 온다고 하잖아요? 제 힘을 조금이라도 남편에게 주고 싶어서죠.... 정말이지 기쁘고 고마운 일이에요. 남편도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서 편안하고 밝아졌죠..."
 
 
 
 
남편 : "아니 정말입니다. 이런 세상이 있었다니.... 이런 생활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이 남성은 자택에서 작은 공장을 경영했다. 일도 많았고 경영 또한 순조로웠다. 하지만 일상에는 가슴을 짓누르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공동 경영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입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문에 갖가지 부당한 요구도 그저 묵묵히 참아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상대는 매번 그 은혜를 들먹였고, 의리 있고 성실한 이 남성은 그 앞에서 완전히 무력했다. 심지어는 3일 연속 철야까지 한 몸으로 그의 처 쇼핑하는데 마중 나가기 까지 했다.
 
 
그것은 이 남성에게 영원히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어둡기만 한 미로였다. 해결책을 찾을 여유 같은 건 애초부터 전혀 없었다. 그러고나서 이 남성에게는 암이 발병한다. 공장도 그만두고 모든 굴레를 내던졌다.
 
 
 
 
부인 ; "전 그때 남편이 병이 나서 정말 잘됐다고 생각했어요. 아, 이것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전 지금 남편을 어린아이처럼 기르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스킨십을 하고, 일하러 나갈 때도 매일같이 현관에 나가서 연인들이 서로 부등켜 안듯 남편을 포옹한 후 보냈어요. 지금이 저는 정말 행복해요. 병에 걸리기 전 같았으면 남편에게 남사스럽다고 혼났거든요. 밤에 집에 돌아올 때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만나 집까지 쭉 걸어서 돌아와요. 손을 잡고 밤하늘을 보면서요. 남편이 '내 인생도 참 많이 바뀌었어' 라고 말하면, '잘됐잖아요, 잘된 거예요.' 하며 손을 꼭 잡고 얘기해주죠."
 
 
 
 
남편 ; 정말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정말로 하나가 됐고, 인생을 즐기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도 이해하게 됐고요. 다 제 아내 덕분이죠. 지금은 전혀 아무 검사도 받고 있지 않는데, 집사람이 있는 이상은 암으로 죽는 일 따위는 없을 겁니다. 절대로요..."
 
 
 
 
모임 주관자 ; 암에 걸린 사람들은 모임에 오면 처음에는 별로 웃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여기 이 두 분처럼 자기 혼자서 모든 걸 떠맡으려고 하지 않으면서부터 표정이 달라지고 밝아졌죠. 그 후부터는 자주 웃기 시작했어요. 힘들이지 않고 말이죠. 처음에 오면 '저.. 선생님, 잠깐만요. 제가 실은 암이거든요.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하면서 암에 걸린 것에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점점 여러 가지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난 암에 걸렸어요, 암이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게 돼요.
 
 
 
 
직암장 수술 한 여성 ; 직장암 수수로 인해 인공항문 상태가 된 지 9년째네요. 지금에야 겨우 그다지 부자유스러운 느낌을 갖지 않게 되었으나, 수술 후 인공항문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 때문에 순간적으로 급성 위염을 일으킬 정도였어요. 모임 주관자께서 '목숨이란 건 자신이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몇 년을 산다, 아니면 이만큼밖에 못산다, 그런 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요'라고 말씀하셔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는 개신교 신자인 라이올드 니버의 기도문을 얘기해 줬어요. '신이시여,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을 주시고,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 차이를 깨달아 살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주옵소서.'라고..
 
 
 
그래서 ' 아, 이거구나!' 하고 깨달았죠. 지금의 나의 몸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용기가 내게 필요한 거구나 하고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긴장되었던 어깨에서 저절로 힘이 빠졌어요.
 
 
전 그때까지 남편이나 아이, 내가 아닌 남에게 엄격했고, 저 자신 또한 모든 일에 열심으로 안간힘을 다해왔어요. 시각장애인을 위해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의무감 때문에 너무 무리한 나머지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하면 되는 거다, 그 이상은 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너무 편해졌죠. 몸도 물론 자연에 맡기면 된다고...그래서 요즘은 너무 한가로워졌어요.
 
 
 
그리고 웃는 얼굴.... 암에 걸리고 나서 배운 것은 웃는 얼굴이에요. 웃는 얼굴의 소중함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에요.
 
 
 
 
 
 
자궁암 판정 받았던 여성 ; 15년 전 자궁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의사로 부터 수술과 기타 치료를 강력히 권유 받았지만 저는 애당초 서양의학 치료를 받을 생각이 없었어요. 과거 제가 겪었던 체험의 영향이 그러한 결단을 내리게 했습니다.
 
 
 
영양사였던 저는 일찍이 간에 병이 난 적이 있었는데, 직업상 건강에는 누구보다도 신경을 써왔는데 어째서일까? 엄밀한 칼로리 계산, 그리고 고단백, 고비타민을 신뢰해왔던 저의 신념이 이때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리고 의료 자체에 대해서도...
 
 
 
바로 그때 친구로부터 현미식을 알게 된 것입니다. 현미식을 실천한 지 3개월이 지나자, 간 검사 데이터는 거의 정상치를 보였습니다.
 
 
 
문득 깨달았어요. 식사를 통해 몸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실감한 거죠. 현미식으로 정말 병이 나을까..... 게다가 전 그때까지 모든 병은 의사가 고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겁니다. 병은 스스로가 고치는 거였어요.
 
 
 
또한 할머니로부터 몸에 칼을 대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어려서부터 늘 듣고 자란 기억이 있었다. 스스로 암을 고치자는 결단은 저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암을 떠 안은 채 식이요법가 밑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영양사가 아닌 현미채식의 지도자로서...
 
 
 
그러나 병으로부터 치유가 되기 위해서는 식사뿐만 아니라 '마음'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무렵 저는 어느 폐암 환자를 만났는데, 1년의 시한부 삶을 선고 받았다는 그 사람은 이제부터의 문제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고 수술 전날 병원을 탈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 6년간을 혼자서 살아왔답니다.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너무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을 때는 그저 모든 걸 받아들이라고....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걸요. 정말이지 누가 어떻게든 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털어놓았죠. 그랬더니 그는 '나 자신도 너무나 괴로웠어요. 하지만 전부를 받아들였어요'라고 대답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알 수가 없었죠. 그는 '어쨌든 통증이 왔을 때는 아, 고마운 일이다 하고 말해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전 정말 이해가 안 됐죠. 제 경우는 통증이 오면, 이런 제기랄, 이런 망할 놈의 통증! 늘 그런 식이었거든요. 통증과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한 말을 몇 번이고 저 자신에게 들려주면서 생각했죠. 이제 통증과 맞서는 걸 그만 두자고요....
 
 
 
그만두어서 그걸로 지는 거라면, 뭐 그것도 괜찮다고. 지금 이 한때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통증을 받아들이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물론 여러 가지 자연요법들도 병행했어요. 그 이후로 '통증'을 '도취'로 바꿔갔어요. 아프다, 아, 그래서 기분이 좋다, 이렇게요. 아프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줬죠. 그랬더니 음... 뭐랄까, 말로는 표현하기 힘들지만, 통증이 그저 단순한 통증이 아닌 게 된 겁니다. 통증 자체가 서서히 달라졌어요. 통증이 오면, '아, 오늘도 왔네, 고마워.' 하는 거예요.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말이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날은 통증이 시원하게 가시는 느낌이었지요. 그리고 정말로 멋지게요. 물론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요.
 
 
 
통증을 잊어버린 지 벌써 7년쯤 되었습니다. 그리고 4년 전 병원에서 정밀 종합진단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이상 없음' 이었습니다.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변할 수 있는 거예요. 바꾸려고만 하면 바뀝니다."
 
 
왜 암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후에 자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저는 암이 걸린 원인이 남편과의 관계에 있었어요.
 
 
 
남편은 너무나 엄격한 사람이었어요. 저는 그저 참고만 있었죠.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그저 참고 또 참았어요.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인내의 연속이었죠. 남편이 아무리 늦게 집에 들어와 속이 상해도, 저녁을 차려놓고 새벽 3시에도 마중을 나가 '이제 오세요.' 했을 정도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남편에게 '당신 정말 너무해요'라고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하지만 남편은 너무 완고하고 냉정한 사람이라서 감히 그런 말은 못했어요.
 
 
 
어쨋든 참았어요. 웃는 것조차도요. 꾹꾹 참았다가 아이가 스무 살이 되면 이혼하자고 늘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전환기를 맞았어요.
 
 
 
 
 
마음 편해지자
 
 
많은 분들을 상담해주는 일을 하면서 병 걸린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러다보니 처음엔 저까지 어두워졌어요. 몸도 몸이지만, 저마다 나름대로의 문제점들을 많이들 떠안고 있더군요. 그러한 분들을 보면서, 내가 겪는 고통쯤은 대수로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한편으로, 역시 나는 더 많은 공부를 해야겠구나, 나 자신이 암에 걸린 건 내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내게도 내 인생이 있는거다, 이렇게 무작정 참고 살 일이 아니다,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제멋대로였지만요....
 
 
 
하지만 그러고 나서 알게 됐어요. 남편이 왜 그리도 권위적이었는지, 어째서 그리도 독재적이었는지... 모두 제가 나빴던 거였어요. 제 스스로 현모양처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죠. 그래서 하기 싫어도 억지로 참아가며 무리를 했던 거예요. 그걸 남편도 알았고요. 제 기분이 그대로 전달되니까 남편도 엄격해지는 거죠. 남편이 혼자 외로워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런 생각이 들고나니 불현듯 사람이란 그렇게 열심일 것도, 그렇게 안달할 일도 없으며, 그저 마음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걸 그만두게 됐어요. 그게 오히려 남편을 편하게 만들었나 봐요. 제 마음이 편해지니까 남편 쪽도 정말 변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편해진 게 남편에게 그대로 전해진 거예요. 그때까지는 남편도 저의 그런 완벽주의가 재미없었던 거겠죠. 제가 싫으면서 억지로 했던 걸 알았으니까요. 암 덕분에 마음 공부를 한 셈이에요.
 
 
 
 
 
 
주관자 ;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어서 신이 나면 자연스럽게 춤을 추게 되잖아요. 기쁠 때는 웃고요. 웃으면 세포도 열리게 되니까 웃으면 좋은 거예요. 이제부터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고, 자신을 최대한 아끼고 살아야 해요. 자신이 편해질 것, 그리고 자신이 기쁘고 즐거울 것, 이런 일들을 최대한으로 맛보아야 한다는 거죠.
 
 
암은 새로운 나를 낳아주었고, 진정한 나를 깨달을 수 있게 해줬어요. 그야말로 자연이 주신 은혜라고 생각하세요. '어째서 내가 이러한 병에 걸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가 아니라, '이 병으로 인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지? 라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모두들 밝아지지 않을까요? 자신이 왜 이러한 병에 걸렸는지를 원망할 것이 아니라, 이런 병에 걸렸으니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암아, 고맙다!
 
 
 
PD ; 제 아무리 불행한 사건도 하나의 '예고'에 지나지 않는다. 암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모두에게 암의 발병은 아마도 인생 최악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왜 하필 내가? 내가 뭘 어쨌기에? 허무한 생각만이 가슴을 메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땠는가? 암 선고를 받고 2년이 지나고 5년이 흘러 10년을 넘긴 지금, 그것은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 행복의 '예고' 였다.
 
 
 
암 선고를 계기로 내가 만나본 생환자들은 변했다. 오랫동안 가슴을 닫고 살아온 인생의 빗장을 풀어헤친 결과, 다른 이를 용서하고, 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새로운 가치관과 인간관계를 키웠다. 병으로부터 실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고, 인생을 치유 받았으며, 또한 연령의 벽을 넘어 지금은 한층 인격적인 성장을 계속해나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암 선고 당시의 충격과 한탄, 원망과 노여움을 지금은 비할 데 없는 감사의 마음으로 바꾸어냈다. 또한 그들은 말한다.
 
 
 
"암은 보물이다."
"암에 걸린 후 인생이 장밋빛으로 변했다."
"암에 걸리길 정말 잘했다."
"암에 걸리고 난 이후 나 자신이 훨씬 좋아졌다."
 
 
 
패자 또는 암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층 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암은 분명 앞으로 연달아 이어질 불행의 '예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렇지 않았다. 암을 행복의 '예고'로 맞아들였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쌓아온 그들의 작은 의지와 노력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암환자로서 나 역시 그것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마무리
 
 
이 책을 더 써내려 간 지금, 제 가슴을 뜨겁게 채우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의 위대함, 그리고 생명의 무한한 소생력을 알게 된 기쁨이 그것입니다.
 
 
 
설령 어떠한 절망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은혜로 가득한 마음의 힘을 믿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다면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암으로부터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여지없이 말합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지금 바로 행동에 옮긴다면 반드시 무언가가 변할 것입니다. 적어도 포기하고 비관적으로 사는 것보다는 매일매일이 분명 밝아질 것입니다. 암을 이겨낸 생환자들은 멋지게 자립하여 의사를 평등한 파트너로 보고 있습니다.
 
 
 
정신신경 면역학의 몇 가지 보고에 따르면, 의사들에게 질문이 많고 불평불만의 감정을 잘 드러내는 '다루기 힘든 환자'쪽이 순종하는 환자들에 비해서 훨씬 장기 생존율이 높다고 합니다. 따라서 만약 환자가 의사에게 순종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의사로서 진정 기뻐해야 할 일이어야 합니다.
 
 
한편, 어떤 환자분은 식이요법 같은 건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현미채식을 오랫동안 계속하면서 술과 담배도 끊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무리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계속해야 원래의 식사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일생 계속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저는 그런 분들에게 늘 원래의 식사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대답합니다. 왜냐하면, 현미채식을 중심으로 한 식사를 어느 정도 계속해 보면 신체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 병에 걸리기 이전의 식사가 얼마나 건강에 좋지 않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에만 걸리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식단을 바꾸고, 술, 담배를 끊는 등의 생활습관을 개선한 다음에 찾아온 건강은, 이제까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차원 높은 건강입니다. 가벼워진 몸, 넘치는 활력, 쾌식(快食), 쾌면(快眠), 쾌변(快便)... 이들 모두를 틀림없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원래의 식사로 되돌아가려 하겠습니까?
 
 
저도 지금이 제 인생에서 가장 건강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마음도 몸도 모두 말이죠. 그래서 일생 동안 기쁜 마음으로 현미채식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출처 ; 암이 내게 행복을 주었다.
- 암으로 부터 살아 돌아온 사람들, 그 기적 같은 치유의 기록 -
- 암의 자연치유를 경험한 400여명의 체험자를 취재하여 그 공통점을 정리한 책 -
저자 ; 가아다케 후미오(신장암에서 회복한 체험자, 일본 NHK 방송 PD)
 
 
 
*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의 원본내용 중 핵심 내용만을 채택하여 약간의 편집을 가했지만 이 책의 의도에서 벗어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암 투병하실 때 식생활과 마음가짐에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경황없고 정신이 혼미해 공황상태에 빠져 책을 여유있게 보기가 힘든 상황에 있는 환자분과 가족분들을 위해 참고할만한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0]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