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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의 암은 방치할 수록 편안
한국후코이단 조회수:232
2019-05-27 15:37:00

미묘하게 변하는 검사 수치의 비밀

 

 검사수치에는 사실 미묘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같은 혈액을 각기 다른 검사 시설에 의뢰하면 서로 다른 측정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검사 기기나 시약이 다른 탓도 있으며, 동일 시설에서도 검사 기사가 바뀌면 측정값이 또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가느다란 혈관에서 억지로 잡아 빼 채혈하면 적혈구가 망가져(이것을 용혈이라고 한다) 결과에 영향을 준다. 또한 격렬한 운동도 영향을 준다. 중성지방 등은 15시간 이상 공복일 때가 아니면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검사 전 주의사항도 엄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밥을 먹지 말라고 하니까 그 대신 우유나 커피, 스포츠 음료를 마시고 온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인간에게는 생체리듬이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키나 체온, 혈압 등은 낮과 밤, 아침저녁으로 다르고 몸무게도 월경 전후로 달라진다. 이와 같이 우리 몸은 하루 중에, 혹은 주 단위, 월 단위, 계절 단위로 변화하기 때문에 혈액성분도 당연히 그 영향을 받는다.

 

 정밀검사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정밀검사란 과연 무엇을 위한 검사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자세히 검사하면 원인을 알 수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착각에 첨단 설비를 갖춘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아무리 병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된다 한들 그것을 호전할 방도가 존재하지 않으면 무슨 의미란 말인가?

 

 확실히 근대의학은 원인을 모르면 손쓸 방도가 없는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그토록 원인, 원인, 하고 소리 높여 강조해왔던 것이다. 그 결과, 자세히 조사하여 원인이 밝혀지면 해결될 거라는 오해를 낳았다. 나아가 의료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맹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병의 원인이 체질(유전자)이나 노화라면 어떨까? 체질에는 유전자 재편성이 있을지도 모른다지만 너무 애매하여 그다지 기대할 만한 일이 못 된다. 물론 노화를 막아 다시 젊게 되돌릴 방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끝으로 정밀검사에는 위험한 것, 고통이 수반되는 것, 수치를 참아야 하는 것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 모든 검사를 받는 동안 겪게 되는 육체적, 심리적 고충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과연 무엇 때문에 정밀검사를 하는지검사결과를 바탕으로 사태를 호전할 치료법이 있는지를 거듭 생각해야 한다. 

 

 

 '이상 없음'은 정말 이상 없는가?

 

 검사에 따른 수치를 나타내는 데 있어 예전에는 '정상치'라고 표현했지만, 지금은 기준치 또는 기준범위라고 부른다. 그리고 기준치에 대해서는 건강한 사람의 95%가 포함되는 값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정상이라는 사람 중에서도 5%의 인원은 기준치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며, 반대로 기준치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당장 이상이 있거나 건강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 기준치는 젊은 사람에 해당하는 수치이기 때문에 노인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검사 항목도 하나가 아니라 보통 여러 개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의 95%가 기준치의 범위에 들어간다면 이론적으로는 2개 항목 모두 기준범위에 들어갈 확률은 0.95의 제곱인 90.25%가 된다. 5개 항목이면 77.37%, 10개 항목이면 59.87%(건강한 사람 10명 중 4명 이상은 어느 항목인가 기준범위에서 벗어난다는 뜻), 30개 항목을 검사하면 21.4%가 되며, 약 80%의 건강한 사람이 어딘가에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2011년에 발표한 "2010년 정밀 종합검사' 대상자 약 300만 명의 집계 결과를 보면, '이상 없음'은 역대 최저인 8.4%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내용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 300만 명 중에는 '이상 없음'이라는 보증을 받고 싶어하는 노인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사를 받기가 무섭게 "혈당치가 이상하네?"라거나 "간 기능에 문제가 있군" 하고 지적당함으로써 환자 대열에 오른 사람이 상당수에 이르지 않을까 짐작된다. 한마디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꼴이다.

 

 건강검진이나 정밀검사의 슬로건은 '조기 발견, 조기 치료'이다. 얼핏 들으면 이 말은 빨리 발견하여 손만 쓰면 모든 병이 완치, 근치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대개 조기 발견이나 조기 치료는 완치할 방법이 있는 폐결핵에서 성공을 거둔 수법이다. 애초에 이것을 완치가 안 되는 노인의 생활습관병에 적용하려는 것부터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건강검진 추진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간혹 이상이 발견될까 두려워 검진을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당치 않은 일입니다. 건강검진이나 정밀검사는 자신의 적극적인 건강관리에 무척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조기 발견을 통해 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몰라서 행복한 일도 있고, 공연히 알고 나서 환자가 되어 어두운 인생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이미 오래 전에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평온한 여생을 살고 있는 사람(노인)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검사 결과 '이상 없음' 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이번 검사범위에서는 이상이 없습니다'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검사하지 않은 부분은 알 수 없으며, 내일 일은 어떻게 될지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검사의 '유통기한'은 당일에 한한다는 사실을 깨끗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검사를 해야 한단 말인가?

 

 예전에는 마라톤에 출전하려면 의무적으로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로 까다롭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확실하게 보증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안정적인 상황에서는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격렬한 운동을 했을 때는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례로 2011년 8월 4일, 축구선수 마츠다 나오키가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을 일으켜 사망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사전 메디컬 체크에서는 이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과 같이 건강검진이나 정밀검사를 받음으로써 보다 건강한 인생을 보낸다거나 수명이 연장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요컨대 건강검진이란, '환자 만들기'는 가능해도 '건강 만들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마음을 기울여라

 

 코끼리는 죽을 때가 되면 무리를 벗어나 혼자 죽을 장소를 찾아 떠난다. 하물며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을 리 없다.

 

 우리 몸은 늘 자신을 지키거나 계속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신호를 내보낸다. 그런데 지난 30~49년 사이, 의학의 발달과 함께 모든 것을 의사에게 맡기다 보니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극도로 쇠퇴하고 말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기약도 없이 마냥 (연명장치로) 살려진 끝에 결국 자연의 이치를 벗어난 최후를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언제부터인가 작용하지 않게 된 체내 신호를 알아채는 능력이다. 

 

 인간은 뱀이나 개구리처럼 외부의 기온 변화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변온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체내에서 끊임없이 일정한 온도를 지켜야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체온뿐만 아니라 체내의 모든 환경을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이 커다란 힘이 바로 항상성이다. 우리 몸은 생명의 중앙장치와도 같은 항상성 덕분에 뭔가 안 좋은 사태가 생길 때마다 즉시 회복력, 자연치유력이 가동되어 원래 상태로 되돌리려 한다. 이 힘이 쇠약해지거나 무뎌질 때가 바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항상성이 흐트러지거나 회복에 방해가 될 만한 사태를 만나면 몸은 여러 방법으로 경고 신호를 보낸다.

 

 따라서 극단적으로 말하면, 의사 말을 듣기보다 자기 자신의 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까닭에 '돌연사'라는 것도 사실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는 능력을 잃었거나 아니면 그 신호의 의미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전조 증상이 있었을 것이다. 이토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기계(인체)가 아무런 징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망가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정확히 알아채는 능력을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웬만하면 병원을 찾는 대신 스스로 용태를 살펴보는 습관이 중요하다. 콧물이 나고 설사 좀 했다고 의사니 약이니 하며 법석 떨지 말라는 얘기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발열이나 기침, 설사 같은 증상은 몸이 스스로 나으려는 반응이다.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는다는 따위의 터무니없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물론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의사로부터 앞으로 어떻게 예방해야 하는지, 어떻게 몸을 돌봐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도 좋다. 하지만 처방 받은 약을 복용하기 전에 일단 한 박자 멈춰보라고 권하고 싶다. 약은 머리맡에 두고 몸의 자연적인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자. 당신은 언제라도 약을 복용할 수 있다. 하지만 복용을 잠시 미뤄둘 수도 있다. 그런 다음 몸에 증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을 찬찬히 생각해보는 것이다. 증상이란 몸이 당신에게 보내는 경고이거나 SOS일 테니 그 신호에 마음을 기울여보라.

 

 예를 들어 설사나 복통이 발생한 것은 폭음, 폭식, 또는 상한 음식을 먹어서인지도 모른다. 언제 무슨 음식을 먹었을까? 나의 식습관은 과연 어떤가?

 

 몸이 보내는 신호에 마음을 기울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생활습관을 한번쯤 꼼꼼히 뜯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체험을 거듭 쌓아가며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의 일과 비교해보도록 하자. 그러나 보면 '뭔가 심상치 않다, 상태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심각하다, 의사에게 보이는 게 좋겠다' 등등 예외의 경우를 알게 될 수도 있다.

 

 건강한 사람은 몸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사람이다. 또한 몸이 보내는 신호를 결코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일상생활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경솔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진수성찬 앞에서도 수저를 놓아야 할 타이밍을 잘 알고 있고, 걱정거리가 있거나 우울한 일이 있을 때는 어두운 방 안에 틀어박혀 있기보다는 공원으로 나와 천천히 걸으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이지 가벼운 증상에 호들갑을 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이 몸을 사랑하는 자세이고, 자기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세가 아닐까?

 

 

 죽기에는 암이 최고다.

 

 나는 20여 년 전부터 어딜 가나 '죽기에는 암이 좋다'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 이야기를 책으로도 써냈다. (노년과 죽음을 피하지 마라, 행복한 임종 : 의사와 엮이지 않고 죽는 법)

 

 그러다 보니 '과연 어떻게 죽나 보자'라며 나의 임종 자리에 꼭 참석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생겨날 정도로 뭇시선을 끌기도 했다. 암 때문에 지독한 고통을 겪거나 소중한 사람을 암으로 떠나 보낸 사람들 입장에서는 나의 주장이 곱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죽기에는 암이 최고'라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주변에 보이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마지막 의무라 여기기 때문이다.

 

 서서히 쇠약해져가는 데에는 암이 적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거의 모든 암환자가 병원에서 그 과정을 완전히 숨긴 채 병마와 싸우며 힘겹게 죽어가는 것은 너무도 큰 낭비인 셈이다. 또한 '최고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의 과정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차라리 돌연사를 희망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저 인색하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둘째, 비교적 마지막까지 의식이 맑은 상태로 의사표시를 하기에는 '암'이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우선 마지막까지 의식을 맑게 유지하려면 '구급차 사절, 입원 사절'이라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머지않은 미래의 집행일을 비교적 확실히 정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신변정리를 깔끔히 할 수 있고 신세를 진 사람들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암으로 인한 사망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다. 암이라고 하면 누구나 '극심한 통증'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암이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지독한 암이라도 그 가운데 30%는 통증을 수반하지 않는다. 요컨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아프지 않다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분명히 암이었는데 통증 하나 없이 사망한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신기하게도', '보기 드물게', '뜻밖에', '기적적으로' 라는 표현과 함께 특별한 예로 가볍게 치부돼버리곤 한다. 하지만 세 사람 가운데 하나라면 결코 신기한 일도, 보기 드문 일도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암을 '지독하게 아픈 병'이라고 여기는 까닭은 방사선이나 맹독성 항암제로 암세포를 어설프게 괴롭히기 때문이다. 완전히 근절할 수 있다면 몰라도 여전히 암세포의 잔당이 존재하는 이상, 아군을 해친 데 대한 원한 때문에라도 복수에 나서지 않겠는가? 암을 무찌르기 위해 이쪽에서 먼저 칼을 휘둘렀으니 몸 안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고령자의 암은 방치할수록 편안하다.

 

 나는 노인요양원으로 옮겨올 당시만 해도 '말기암은 지독히 아픈 것'이라는, 이른바 의사계의 상식에 절어 있었다. 그래서 말기암 환자에게 통증이 시작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솔직히 겁이 났다. 게다가 의료적으로는 집단생활시설에 속하는 노인요양원이다 보니 이래저래 너무 힘에 부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고령자의 '때를 놓친 암' 관련 사례가 다섯 건, 열 건으로 점점 늘어나는 동안 저절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처음 암을 발견할 당시에 통증이 없으면, 그 후 아무런 조치 없이 내버려두어도 통증이 없다는 사실이다.

 

 통증이 있다면 암은 더 빨리 발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통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 계기는 드물다. 가령 피를 토하거나, 장출혈, 황달, 식욕 감퇴, 소변 혹은 침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 몸이 야위기 시작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등의 이유 때문이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 동안, 내가 몸담은 노인요양원에서 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집계 내용을 보면 모두 52명 가운데 간호를 받은 사람은 27명이다. 남녀별로 집계해보면 75세 이상인 남자가 21명(87.5%), 여성이 25명(89.2%)이며 그중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만큼 아팠던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사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은 사람들 역시 처음부터 아파서 입원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증상 때문이거나 혹은 임종 때만이라도 병원에 모시고 싶다는 가족들의 염원으로 병원을 찾은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만난 고령의 암환자들에게 완전한 방치를 권한 적은 없다. 하긴 당사자가 고령인 데가 거의 치매 증상이 있다 보니 판단을 내리는 건 가족들의 몫이다. 가족들이 환자의 연세를 고려해 더 이상 고통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린 것이므로 간섭하지 않았다. 덕분에 암을 방치한 경우 어떠한 모습으로 죽어가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고, 나아가 '완전히 방치할 수만 있다면 죽기에는 암이 최고다'라는 확신을 더더욱 굳히게 된 것이다. 이런 확신을 얻게 해준 노인요양원이야말로 나의 의사 경력에서 가장 고마운 시간임에 틀림없다.

 

 

 의사의 상식과 자연의 상식

 

 교토 외곽에 거주하는 모리노(84세)씨는 우리 모임(15년째 운영중인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 ; '죽는 방식'이 아니라 죽기까지의 '사는 방식'을 생각하는 모임이며, 생명의 유한성을 자각하여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는 나의 방식'을 점검하고, 그때그때마다 궤도를 수정해나가면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훌륭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의 회원으로 5년 전에 어느 암전문병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았다.

 

 "그때 담당의가 말하길, '연세가 여든이면 권하지 않는데 환자분은 일흔아홉이니 수술을 합시다'라고 하더군요."

 

 그 한마디에 의문을 갖기 시작한 모리노씨는 교토에 묘한 의사가 주관하는 독특한 모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 모임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두세 차례 참석하더니 이후로는 의료와의 연을 완전히 끊기로 결심했다.

 

 그 뒤 5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통증이나 호흡곤란 증세가 없다가 급격히 기력을 잃고 한 달 정도 앓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4년 3개월 동안은 좋아하는 탁구를 치며 건강하게, 그야말로 평범한 생활을 거뜬히 유지했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의료와의 연을 끊은 터라 어느 병원이고 무조건 사절하는 바람에 곤란하게 되었다.

 

 나는 그대로 돌아가시면 '의문사'라는 명목으로 경찰이 개입하여 성가신 일이 벌어지니까 급히 주치의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마침 공교롭게도 교토 외곽에는 아는 이가 없어서 현지 의사회를 찾아가 상담하도록 권했는데, 거기서는 암으로 인한 자연사 따위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며, '의사로서 상식 밖의 문제'라는 이유로 아예 상대조차 해주지 않았다.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어 사방팔방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의사를 찾아낼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 의사 역시 '상식'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암에 걸리면 투병하는 게 당연하죠. 처음부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당장 입원부터 하세요."

 

 이런저런 수많은 검사와 링거주사 등등 판에 박힌 절차를 이행하라는 얘기였다. 모리노씨는 별 수 없이 딱 한 번 링거주사를 맞고 혈액검사를 받은 모양인데, 이후에는 사망 확인을 하고 사망진단서만 발행 받으면 그걸로 족하다며 모두 물리쳤다. 사실 혈액검사 결과, 의사는 폐암의 종양표지자 수치가 너무 높은 것에 놀라 상당히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환자는 교과서다. 이런 환자는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틀림없이 좋은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 후 모리노씨는 어느 날 오전에 사망했다. 가족들이 담당의사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진료 중이라는 이유로 사망 확인은 오후에나 이루어졌다고 한다. 임종은 부인 혼자 지켜보았다. 그녀는 '다음엔 내 차례'라는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남편이 떠나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지켜보았다고 한다. 여간 다부진 분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에 거세게 반대하던 자제들도 나중에는 "이런 평온한 죽음을 보여 주시다니" 하며 고마워했단다. 아닌 게 아니라 가족이 이런 방식으로 떠나가게 되면 무척 강한 인상으로 남게 마련이다.

 

 모리노씨는 84세이므로 천수암에 해당한다. 천수(天壽)란 '하늘이 내려준 수명'이며 인생의 정년이다. 의사의 상식대로라면 그들은 모두 병원에서 온갖 치료를 받으며 세상을 떠나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의사의 상식이 아닌 자연의 상식을 택했고, 그에 대한 선물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출처 :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저자 ; 日本 나카무라 진이치 의사

- 평생을 환자들 곁에서 살았던 의사이자, 임종을 앞둔 노인을 돌보는 의사로 일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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